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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럼] 췌장암의날에 부쳐 /문영수
  • 등록일2018.10.16

지난해인가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다소 엽기적인 제목의 일본영화가 개봉된 적이 있었다. 제목만 보곤 도저히 내용을 가늠할 수 없었지만 췌장을 전공하는 필자로서는 그 영화에 호기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왜 저런 제목을 붙였을까 이해했지만, 아무튼 췌장이 일반인들의 관심사로 등장한 데 대해서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사람이 췌장의 존재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기원전 3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그리스의 의사 헤로필로스가 처음 언급했다고 전해지지만 췌장이라는 장기에 이름을 붙인 사람은 에페수스에 살던 루퍼스라는 의학자였다고 한다. 당시에 췌장을 해부해보니까 살코기 덩어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그렇지만 췌장이 소화효소를 만들어 음식물을 흡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1830년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알려지게 된다. 무엇보다도 췌장이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데에는 개를 이용한 조건반사 실험으로, 신경 조절에 따른 위와 췌장의 기능을 밝혀서 1905년에 노벨상을 받은 러시아 생리학자 파블로프의 힘이 컸다고 할 수 있다.


췌장은 순우리말로는 ‘이자’라고 부르는데 아주 부드럽고, 길쭉하게 생겼으며 편평한 장기로서 위의 뒤편에 자리 잡고 있다. 길이는 12~15㎝, 무게는 90g 전후이다. 머리, 몸통과 꼬리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머리 부분은 중요한 혈관이나 신경이 많이 지나는 곳이라서 수술을 할 때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다른 장기와는 달리 감싸는 보호막이 없어서 암이 생기면 주변으로 빨리 퍼지게 된다. 따라서 암을 진단했을 때는 이미 진행된 경우가 많아 치료가 어렵다. 


췌장암은 몇 가지 종류가 있지만 췌장액이 흘러 다니는 길이 되는 췌관에서 생긴 암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일반적으로 말하는 췌장암이 이것이다. 이 밖에도 물혹에서 시작되는 암도 있지만 성격은 아주 다르다. 모두 알고 있는 대로 경과가 나쁘고 무서운 암이다. 패트릭 스웨이지라는 유명한 배우와 성악가인 파바로티, 애플의 창시자인 스티브 잡스도 췌장암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6000명 이상의 환자가 새로 생기며, 해가 갈수록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여전히 5년 생존율은 암 중에서도 가장 낮아서 10%가 되지 않는다. 요즘처럼 암 치료의 기술이 발달한 시대에도 이런 암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다른 암의 경우에는 위험인자를 가진 사람들만을 집중적으로 검사해서 초기 암의 상태에서 발견해 치료하지만 췌장암은 위험인자가 제대로 밝혀져 있지 않아서 어떤 사람을 대상으로 검사해야 할지조차 잘 모른다는 게 문제이다. 지금까지는 만성 췌장염, 흡연, 50세 이후에 집안 내력 없이 갑자기 생긴 당뇨병 등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방송에서 췌장암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나면 한동안 진료실은 췌장을 검사해달라고 찾아오는 사람들로 붐빈다. 등이 아프면 췌장암을 의심해야 한다는 속설이 퍼져 있어서 그런지 의외로 그런 사람이 많이 찾아온다. 체중이 빠지거나 황달, 소화불량, 복통 등 췌장암에서 잘 생기는 증상에 대해 물어보고 사진 촬영이나 피검사를 할지 결정하게 된다. 그런데 지금 검사해서 췌장이 아무렇지도 않다면 안심은 되겠지만 다음 검사는 언제,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 정해진 게 없으니 의사로서 막막하기만 하다. 


매년 11월은 세계 췌장암의달이다. 또 21일은 췌장암의날이다. 이 병을 진료하는 의사들이 중심이 되어서 전국의 여러 병원에서 췌장암을 알리는 행사를 열고 강의도 한다. 환자나 의사 모두 힘들어하는 암이 분명하지만 계속해서 효과 좋은 항암제가 나오고 있고, 다양한 치료법이 개발되고 있어서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지금으로선 무엇보다도 초기에 췌장암을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연구가 시급한 실정이다. 그래야 수술로써 완치할 수 있는 환자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다음 달에 있을 췌장암의날에는 잠깐이라도 췌장에 대해 생각해보고, 췌장암 퇴치에 골몰하고 있는 연구자들을 위해서 응원을 해보는 건 어떨까.


문영수(인제대학교 해운대백병원 원장)



※이 칼럼은 2018-10-15 국제신문 25면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