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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의료진 소개

제목 [메디칼럼]느리게 걷기-문영수 원장
등록일
2017.09.25
조회
129

사람이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면 여러 가지 신체의 기능이 떨어지고 면역력이 약해진다. 심장과 폐의 기능도 약화되어 과격한 운동이나 체력을 요구하는 일은 힘들어진다. 감각 기능도 둔화돼 주위환경에 적응력이 떨어지게 되어 행동의 정교함이 없어지고 동작이 느려지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우리가 떠올리는 노인의 이미지는 전체적으로 ‘느리다’는 것이다.

    
얼마 전 저녁 시간에 다급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집에 홀로 있던 노모가 방에서 미끄러져서 다쳤다는 것이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불과 하루 전에 찾아뵈니 걸음걸이가 불안하고 바닥이 미끄러워서 조심하라고 몇 번을 당부하고 왔던 터였다. 응급실에서 급히 검사를 했더니 넓적다리뼈의 골절이라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노인은 동작이 느리니 넘어지는 상황에 빨리 대처할 수 없어서 생긴 일이었다. 어떻게든 수술하지 않고 좋아지는 방법은 없는지 문의했지만 골다공증 때문에 뼈가 약해서 좋은 경과를 장담할 수도 없지만, 수술이 꼭 필요하다는 주치의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지만 정작 그 이후가 더 문제였다. 아들이 삼 형제나 있지만 곁에서 수발할 자식이 아무도 없는 것이다. 경험해본 사람들이라면 다 아는 얘기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는 다들 바빠서 집안에 아픈 사람이 생기더라도 누가 나서서 그 일을 맡지 못한다. 결국에는 간병할 사람을 구해서 맡길 수밖에 없는데 병원비 외에 간병인에게 지불해야 하는 비용 때문에 가족들의 경제적인 부담도 커진다.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얘기지만 어머니 병간호의 책임을 지고 나서야 비로소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이런 일을 겪어보니 누구에게나 만만치 않은 일이란 걸 깨닫게 되었다.

세계적으로 고령 인구의 비율이 높은 일본에서는 가족이 환자를 챙겨야 하는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오래전부터 재택간호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서비스는 장기간 도움이 필요하지만, 집에서 지낼 수 있는 만성질환을 앓는 노인들을 위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10여 년 전부터 노인장기요양급여 제도를 통해 수혜자의 등급에 따라 가정방문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청소, 요리까지 모든 부분을 다 해결해주지 못 하는 것이 현실이며, 앞으로는 이 일을 할 사람이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암울한 예상마저 나온다.

 
병원에 단기간 입원하는 환자들을 위해서는 ‘간호간병 통합서비스’가 있다. 이미 여러 해 전부터 많은 병원에서 해오고 있으며, 지금 우리 병원에서도 이 서비스를 시작하려고 병실을 개조하는 공사를 한창 진행하고 있다. 전체 병동의 일부를, 가족들이나 간병하는 사람이 필요 없는 ‘보호자 없는 병실’로 만드는 것이다.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비교적 손이 많이 가고 노인환자가 자주 입원하는 내과나 정형외과 등을 중심으로 운영한다. 혜택을 받게 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시간적, 경제적 부담을 덜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제도이다. 그러나 현재는 아주 일부에게만 제공된다는 데에 문제가 있으며, 제도의 확대에는 많은 걸림돌이 앞에 놓여 있다.

    
이제 우리 사회의 고령화는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됐다. 노인들은 빨리 걷지 못하고 동작도 느리다. 당연히 노인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할 때에는 이 ‘느림’에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 조금 느리게 지내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노인들만의 공간을 만들고, 그 속에서는 삶의 속도가 젊은 사람들과는 다르다 하더라도 잘 지내게 할 방법은 없을까. 가능한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도로의 차선 하나는 실버 라인으로 정해서 천천히 다녀도 괜찮은 길을 만들어본다든지…. 어느 나라에서는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들만이 모여 사는 특별한 장소가 있어서 그런 사람들의 장애가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지는 곳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누구나 나이가 들면 노인이 된다. 오늘 하루는 노인들처럼 조금 느리게 걸으면서 세상을 한 번 바라보자.


해운대백병원 병원장


※ 이 칼럼은 9월 25일 국제신문 29면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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