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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의료진 소개

제목 [人스토리] 삶이란 얼마나 허무한가, 그럼에도 얼마나 사랑스러운가-간호부 박민정
등록일
2017.02.13
조회
926

처음 신규간호사라는 이름으로 병동에서 일을 시작한 후,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입원해서 며칠 간단한 치료를 받고 웃는 얼굴로 퇴원하는 환자들이 있었던 반면 가족들의 눈물과 오열 속에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 환자들도 많았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과 그보다 더 많은 이야기들 속에 조금씩 변해가는 내가 있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신규 시절,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 환자들을 보는 것이 참으로 괴로웠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환자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물만 흘리는 보호자를 보고 있노라면 내가 무능력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무거운 공기와 괴롭다 못해 짓눌러질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진통제를 주고 환자와 보호자의 손을 잡아주며 조금만 더 참으면 지금보다 나아질 거라는 기약 없는 말을 읊조리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함께 얘기하고 눈 맞추며 고맙다고 손을 잡아주던 사람이 싸늘하게 눈감는 걸 본 순간 나는 멍해지고 말았다. ’삶이란 이렇게도 허무한 것이구나, 이렇게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끝나는구나, 다시 눈뜨지 못하면 그만인 것을...’ 내 마음은 공허함으로 가득 찼다. 어리지 않던 나이에 처음으로 직면한 삶의 허무함이었다. 내 몫의 일을 겨우 껴안고 허덕거리는 나에게, 통증에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는 환자와 어찌할 바를 몰라 발만 동동 구르는 보호자의 눈빛은 여전히 부담이고 짐이었다.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갔고, 그 긴장과 조급함에 환자나 보호자의 말은 나에게 일거리에 불과했다. 매일 조금씩 스러져가는 생명을 보고 있음에도 나는 무감각해졌고, 그저 해야 할 일에만 충실했다. 따뜻함이라곤 없는 의무적인 모습으로 자신을 대하던 나를 환자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조금 더 많은 시간이 지나 일도 감정도 좀 더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된 때에도 공허함은 여전히 둥지를 틀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무미건조하게 일하고 있던 나를 변하게 한 환자가 있었다. 차가운 겨울에 처음 간암 선고를 받은 그 환자는 항암치료를 해도 하지 않아도 세 달을 넘길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입원했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람답지 않은 차분한 말투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모습에 인간적인 관심이 생겼지만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이내 잊혔다. 평소처럼 혈압과 체온을 재고, 통증이 있는지 의무적인 물음 후, 병실을 나서려던 순간 평상시보다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그 환자가 나를 잡았다. "간호사님, 잠시만...잠시만 저랑 얘기하실 수 있을까요?" 의아해진 나는 환자와 함께 병실 복도에 나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남은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 항암치료를 할지 말지에 대해 물어볼 것이란 내 생각을 뒤엎고 그 환자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남은 시간 동안 어떻게 해야 가족들과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추억을 쌓을 수 있을지, 어떻게 보내야 인간답게 삶을 마무리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환자를 보면서 삶보다 죽음에 더 가까웠던 그간의 환자들을 보며 느꼈던 내 감정과 생각들이 머리에 떠올랐다. 나는 얼마나 오만한가. 내가 무엇이기에 그들의 삶을 허무하다고 결론지었나. 그간에 많은 죽음을 보면서 들었던 내 생각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 환자는 마지막까지 행복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눈 감는 그 순간까지 끝이 아니구나, 남은 시간은 나의 것이고 살아있음에 발버둥 쳐야 하는 것이구나. 이기적이고 어리석었던 나는 이제야 다른 사람의 고통에 진심으로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삶이란 참으로 괴롭고 허무하다, 그럼에도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 이 글은 부산광역시 간호사회에서 발간하는 <부산간호> 겨울호에 게재되었던 원고입니다.
 


▶블로그에서 전문 보기 : http://blog.naver.com/haeundae_paik/220931829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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