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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인연

  • 세 번째 몽골 의료봉사를 다녀와서

부산백병원은 2004년부터 의료빈국의 해외심장병어린이를 한국으로 초청하여 무료심장수술의 혜택을 베풀고 있는데, 그 동안 4개국(캄보디아, 필리핀, 베트남, 몽골) 90명의 어린이들에게 새생명을 선물해 주었다. ’인술로써 세상을 구하고, 어짊과 덕으로 세상을 구한다는 뜻인인술제세(仁術濟世), 인덕제세(仁德濟世)’는 창립이래 70년 동안 강조되어 지켜오는 인제대학교 백병원의 정신이다. 

세 번째 몽골 의료봉사를 다녀와서


다시 찾은 몽골

2017년 6 30일부터 74일까지 45일동안 해외심장병 어린이 무료진료를 위해 몽골을 다녀왔다. 2015 8명의 몽골 어린이들을 처음으로 본원으로 데려와 수술한 것이 어제 일처럼 생생한데, 벌써 3번째 방문이다. 그동안 심장수술을 받았던 아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자라있을지, 이번에는 어떤 아이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하면서 한편으로 걱정스럽다. 올해부터는 다행히 부산에서 울란바트로로 향하는 직항노선이 생겨서 김해공항에서 바로 출발할 수 있었다. 새벽 6시부터 아이들에게 전해 줄 과자며 학용품, 진료에 필요한 장비 등을 챙기느라 공항 한켠에서 구슬땀을 흘리면서도 기뻐할 꼬맹이들의 모습에 의료진 모두의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제예’의 게르(Ger) 위에 뜬 은하수

징기즈칸 국제공항에 그동안 수술받았던 몇몇의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우리를 환대해준다.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인데 다들 건강해 보여서 더 반갑다. 숙소에 짐을 던져놓고, 작년 수술받은 아이들 중 `제예`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새침떼기 치메츠세이(7)네 집에 방문진료를 나섰다. 당시 제예는 복잡심장기형으로 심장판막성형수술도 함께 시행했었기에, 성형해놓은 심장판막이 아이의 성장에 따라 잘 발달하고 있는지 내내 걱정이 되던 아이였다. 제예의 집은 울란바트로 북쪽의 외진 시골에 있다고 한다. 워낙 넓은 초원에 불규칙한 유목생활을 하는 탓이겠지만, 이 곳 몽골인의 시간과 공간 인식은 우리와는 조금 다르다. `저녁 몇시쯤 식사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저녁을 함께 먹자`라고 한단다. 그 저녁이 7시가 될 수도, 9시가 될 수도 있는 터라 손님이 오는 시간을 식사시간으로 알고 마냥 기다린다. 공간적인 거리도 네비게이션이나 정확한 도로지도가 없어 어디어디에서 북쪽으로 한 2~3시간 정도 가면 도착한다는 식이다.


울란바트로 외곽으로 약 2시간 가량을 이동한 차량은 갑자기 포장도로에서 벗어나 오프로드(Off-load) 초원으로 들어간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조금만 더 가면 도착한다던 초원의 들판길은 약 70Km에 달하는 거리였고, 우리는 멀미가 날만큼 출렁거리는 차안에서 꼬박 3시간을 더 버텨야했다. 마침내 끝도 없이 펼쳐진 드넓은 초원에 덩그러니 낡은 게르(Ger)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주위는 이미 어둑어둑 어둠이 내려앉았지만, 체예네 가족들은 모두 전통의상을 입은 채로 함박웃음을 지으며 반겨주었다. 작년 우리 의료팀을 만나기 위해 제예는 이 멀고 먼 길을 아픈 몸으로 달려왔던 것이었다. 불과 1년 사이에새침떼기 꼬맹이는 햇볕에 그을린 건강한 얼굴이 되어있었다. 양떼 무리속을 거침없이 헤집고 들어가 제 몸보다 큰 새끼양 한 마리를 번쩍 안고나와 우리에게 보여준다. 작년까지 숨이 차서 뛰어다니지 못했던 아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씩씩한 제예의 얼굴에서 의료진은 진심으로 `봉사의 행복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의 상태를 체크하고 나니 벌써 저녁 9초원 한가운데에 솥을 걸고 끓여온 몽골 전통의 고기칼국수를 급하게 먹고 다시 출발을 서둘렀다. 올 때 5시간이 소요되었던 거리이니 지금 떠나도 새벽 1~2시쯤이나 도착할 수 있겠다. 하지만 출발한지 두 시간쯤 지났을 때, 현지운전을 도와주는 몽골 자원봉사자가 그만 길을 잃었다. 네비게이션도, 이정표도, 심지어 가로등도 없는 초원에서 단지 낮에 차량이 다녔던 타이어 흔적을 찾아 운전하는데, 완전히 어두워진 들판에 차량 전조등만으로 그 흔적을 찾는다는 게 불가능해 보일 정도였다. 이리저리 헤맨지 벌써 4시간 째자정이 넘었지만 아직 들판 한가운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무래도 길을 물어봐야겠다면서 멀리 개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다시 차를 몰아 겨우 발견한 게르 한 채... 한밤중에 잠을 깨워 길을 묻는 사람도, 자다가 일어나서 길을 가르쳐 주는 사람도 너무 태연하다. 여기는 이런 모습이 일상인 유목민들이 사는 몽골의 초원인 것이다. 알려준 대로 겨우 길을 찾아 다시 출발하였다. 생리현상 해결을 위해 잠깐 차량에서 내려 올려다 본 하늘에는 한여름 장대비처럼 수천개 아니 수억개의 별들이 제각각 보석 같은 빛을 지상에 쏟아 붓고, 크고작은 별 무리들은 양떼처럼 은하수를 타고 넘는 장관이 가득 펼쳐져 있었다. 새벽부터 아직도 끝나지 않은 기나긴 일정에 지쳤지만, 모두들 잠깐이나마그 황홀경에 빠져 버렸다. 새벽 3, 겨우 숙소에 도착해서 잠을 청했다.


기약 없는 약속

다음날 아침 9시부터 작년에도 진료실을 빌려주었던 바흐론병원에서 진료를 시작했다. 부족한 수면시간에 모두들 힘들었지만, 이 아이들이 어떻게 진료를 받으러 왔는지 간밤에 직접 체험했기에,선풍기조차 없는 덥고 협소한 공간에서 땀투성이가 되면서도, 저녁 8시까지 우리 의료진을 찾아온 90여명을 정성으로 진료하였다. 대부분 심장 수술이 필요한 아이들이다. 취약한 의료의 몽골에서는 인근 인도와 중국으로 원정수술을 가기도 하지만, 그나마도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이다. 당장 수술을 서둘러야 될 아이들여러 차례 단계적 수술이 필요한 복잡기형의 아이들수술시기가 너무 늦어져 이젠 불가능한 아이들그 수많은 아이들 중에서 환자의 건강상태와 수술의 시급성 등을 따져서 어렵게 선별하였지만, 예산문제로 몇 명밖에는 초청하지 못하는 현실과 남겨진 더 많은 숫자의 아이들에 대한 걱정과 미안함으로 진료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기약없는 약속을 하는 것은 이처럼 어려운 일이다. 이제 초청 후보 아이들의 여권과 비자 작업이 끝나면 심장수술을 무사히 받는 과정만이 남았다.



 

또 다른제예’를 희망하며

어려운 해외진료를 가능하게 큰 도움을 주신 부산백병원 오 상훈 원장님, 밀알 심장재단 이 정재 회장님, ()몽골 오 송 대사님, 그리고 많은 현지 자원봉사자들께 몽골 아이들을 대신해서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힘든 일정을 웃음으로 견딘 우리 의료팀(신 진희 간호사, 민 현순 사회사업실장님, 대구 파티마 심장소아과 이 동원 선생님)에게도 항상 고맙다. 아이들 학용품을 지원해주신 `좋은 사람들` 모임과 흔쾌히 수술지원을 도와주신 ()협성건설의 김 청룡 대표님과 강 주연 이사님께 특별한 감사를 드린다. 몽골하늘의 별빛만큼이나 곱고 아름다운 이런 마음들이 또 다른 몽골 어린이 `제예`의 미소로 돌아오기를 희망한다. `사랑한다`는 말로 거듭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헤르테~~` 

글. 흉부외과 한일용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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