仁濟靑年常 취지문
자신과 세상을 향하는 청년의 열정이 濟世를 희망하는 우리의 가능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변화합니다. 무언가를 알아챈다고 할 때 그것은 바로 변화를 경험하는 순간인 경우가 많습니다. 변하는 것이 우리의 외부, 우리가 이웃하고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세계 안의 삶을 사는 우리 자신의 겉모습이나 속생각, 그 밖에 우리를 이루는 많은 것들도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어디에서 시작했든 하나의 변화는 경계를 넘나들며 다른 변화를 불러옵니다. 안과 밖, 중심과 주변, 자신과 타자를 가르던 익숙한 경계와 규정은 더 이상 각각을 확정하고 서로를 분별하는 틀림없는 준거가 되지 못합니다. 이미 틀지어 진 듯 했던 것들 거의 모두가 변화의 물결을 함께 맞고 있기 때문입니다.
변화, 변화의 경험은 우리 자신을 일깨우고 앞날을 다잡는 계기가 됩니다. 이와 같은 경험을 동인삼아 보다 새롭고 풍부한 삶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밀려드는 격랑을 맞닥뜨리면 자칫 갈 길을 잃고 때론 우리 자신까지도 놓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터인 한국 사회, 한반도의 사정은 어떠합니까?

한국사회는 그야말로 거의 모든 면에서 급속한 변화와 발전의 과정을 밟아 왔습니다. 압축적으로 진행된 산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권위적 지배와 독재를 딛고 달성한 정치적 민주화는 분명히 우리가 꿈꾸고 살아볼 수 있는 삶의 외형을 키워냈고, 뿐만 아니라 성공쟁취에 대한 경쟁적 희망을 품도록 독려했습니다. 가장 듣고 싶은 이야기는 성공신화였습니다. 누군가의 화려한 스토리에 나의 미래를 일치시키며 우리는 종종 성취를 향한 부단한 노력의 첫걸음을 떼었다고 믿기도 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집단적으로 품었던 성장에 대한 열망, 손 뻗으면 닿을듯이 있는 성공을 향한 치열한 경쟁은 한 때 확실히 우리를 추동하는 힘이었습니다.

열풍과도 같이 일어나 한반도 삶의 지형을 개척해 온 성장주의는 그러나 성공만을 견인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쟁취한 성공은 때때로 눈감아서는 안 될 것들을 묵인하고 돌보고 가꾸어야 할 가치를 희생하고 유예하여 이룩한 것이기도 함을 인정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성장을 위해 눈감아 온 것들이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위기를 초래 했습니다. 도시의 그늘로 주저앉은 고립된 개인, 해체된 가족과 공동체, 눈부신 경제성장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빈곤, 산업화의 장애물처럼 취급되는 농촌의 와해, 개발착취로 황폐해진 자연, 심화되는 남북의 이질성과 굳어진 대립구도 등 우리의 삶은 극복하기 쉽지 않은 난제를 안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성장과 성공을 향한 목마름에 급급하여, 성공을 달성한 바로 그 손으로 우리 사회의 곳곳에 그리고 우리 자신의 내면에 파괴적인 굴곡과 갈등을 쌓아온 것입니다.

우리는 변화의 격랑에 휩쓸려 길을 잃기도 하지만 또한 자신과 동료를 추슬러, 온 길을 되짚어보고 그래도 다시 길을 잡는 존재입니다. 하나의 변화가 다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삶터의 곳곳을 그리고 우리가 소홀히 한 여러 관계를 점검하며 그런 희망의 변화를 가늠해보고자 합니다.

비록 심각한 갈등과 문제를 안고 있지만 우리 세계는 결코 완성된 것이 아니기에 위기를 넘기는 노련함보다는 문제와 마주하고 바른 길을 찾는 끈질긴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나온 시간의 경험을 한계로 여기고 그 곳에 우리의 미래를 가둘 것이 아니라 체념과 두려움을 이기는 발랄한 상상력으로 끊임없이 모험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끌어내는 도전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펼쳐진 미래에 자신을 던지며 세상을 가꾸고, 그 속에서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우리 젊은이의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서툴더라도 물러서지 않는, 실패를 맛보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노력과 도전 그 젊은 용기가 모여서 서로의 목소리를 만들고 그 이야기를 함께 들을 때 우리는 우리가 쌓아온 어두움과 화해하고 나아가 우리 자신과 세계를 조화시키는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고 믿습니다.
자신과 세상을 향하는 청년의 열정이 濟世를 희망하는 우리의 가능성이기 때문입니다.